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인디애나 페이서스 (문단 편집) === [[레지 밀러]]의 시대 === 이 팀의 운명을 바꾼 건 1986년에 단장으로 부임한 도니 월시가 1987년에 농구명문 [[UCLA]] 출신의 [[레지 밀러]]를 뽑으면서였다. 드래프트 당시 밀러는 팬들로부터 깡마른 체격으로 인한 운동능력 부족과 누나 셰릴[* 미국 여자농구계의 전설로, 녹스빌 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의 헌액자이다.]의 후광설 등이 도마에 올랐으나, 그는 악바리 정신으로 빡세게 훈련하며 외곽슛을 많이 써서 입지를 다졌다.[* 당시 인디애나 팬들이 원한 것은 명문 인디애나 대학의 슈퍼스타이자 87년 후지어스의 통산 5번째 우승을 이끈 스티브 알포드였다. 알포드는 인디애나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 인디애나 주 미스터바스켓볼에 선정되고 대학도 인디애나에서 나온 홈타운 보이에 올아메리칸 퍼스트팀에 선정된 훌륭한 대학 최고의 선수 중 하나라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188cm의 슈팅가드였던 알포드는 포지션 전환 없이는 NBA에서 뛰기 힘든 트위너였으며, 운동능력도 평범한 백인 가드였기에 NBA에서 한계가 있었다. 인디애나 팬들의 욕심을 떠나 애초에 크게 되기 힘든 선수라 2라운드 초반이 되어서야 뽑혔으며, 4시즌간 169경기 9.7분 4.4점이란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프로생활을 끝마쳤다. 그는 27세란 젊은 나이에 디비전 3 감독으로 커리어를 시작해 이후 여러 디비전 1 학교를 맡으며 5개 팀을 NCAA토너먼트로 이끄는 역대 4번째 감독이 되는 등 성공적인 감독생활을 이어가고 있다.(2023년 현재 네바다대학 감독).] 팀은 레지 밀러를 중심으로 라인업을 점차 고쳐 1988년에 [[네덜란드]] 출신 장신 센터 릭 스미츠(매리스트대)를 전체 2번 픽으로 얻고, 정규시즌 도중인 1989년 2월에는 [[댈러스 매버릭스]]로부터 독일 출신 스트레치형 장신 포워드 [[데틀레프 슈렘프]] 및 1990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 1장을 허브 윌리엄스와 맞트레이드해서 1989/90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단골 팀으로 격상했다. 1990년부터 팀 로고와 유니폼 디자인을 변경한 뒤 정규시즌에선 41승 41패로 플옵에 나가 1라운드에서 [[래리 버드|버드]]-[[케빈 맥헤일|맥헤일]]-[[로버트 패리시|패리시]] 3총사가 이끄는 강호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먼저 2승을 거뒀으나, 이후 3게임을 내 주며 탈락했다. 1991년 드래프트 때 전체 13번으로 클렘슨대 출신 데일 데이비스를 뽑고 1992년에는 트러블 메이커 [[척 퍼슨]]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로 파는 등 착실히 전력 강화를 해왔다. 1993년 오프시즌 때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에서 온 [[래리 브라운]]이 감독 자리에 앉아 [[시애틀 슈퍼소닉스]] 선수 데릭 맥키를 데틀레프 슈렘프와 맞바꾸고, 이탈리아 팀 올림피아 밀라노에서 뛰던 안토니오 데이비스[* 1990년 드래프트 때 전체 45번으로 뽑아놨다.]까지 영입했으며 밀러의 건방진 태도를 순화시키고자 레이커스에서 방출된 [[바이런 스캇]]을 FA로 영입했다. 이런 식으로 밀러 중심의 끈끈한 수비형 팀으로 재편하면서 팀의 색깔은 점점 끈적하면서도 전 선수들이 공격과 수비에 모두 가담하는 형태로 진화했고, 그들의 팀 농구는 점차 위력을 얻어 정규시즌에선 NBA 입성 이래 최다승인 47승 35패 / 디비전 3위로 1라운드에서 샤크-페니의 올랜도 매직을 3전 전승으로, 2라운드에서 애틀랜타 호크스를 4승 2패로 각각 꺾어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유잉-스탁스-오클리 3총사의 뉴욕 닉스를 만났으나, 3승 4패로 탈락했다. 1994 드래프트에서 에릭 피아코스키(네브래스카대)를 전체 15픽으로 뽑았으나 푸 리차드슨, [[말릭 실리]]랑 묶어 클리퍼스의 25픽 그렉 마이너 및 마크 잭슨이랑 맞바꿨다. 또한 애틀랜타에서 FA로 풀린 듀안 페럴도 영입했다. 정규시즌을 앞두고 백코트에 밀러와 잭슨을, 포워드에 맥키와 데일 데이비스, 안토니오 데이비스, 샘 미첼, 플레밍 3명의 교체 멤버로 라살레 톰슨 및 샘 미첼로 각각 두고자 했다. 시즌 내내 밀러, 스미츠, 맥키, 데일 데이비스 등의 뛰어난 득점력으로 정규시즌 승수를 52승으로 올린 뒤, 플옵에서 애틀랜타, 뉴욕을 차례로 꺾어 컨파에서 올랜도랑 맞붙었지만, 또 3승 4패로 졌다. 이렇듯 마지막 한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서 파이널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밀러와 팀 동료들은 정말 분전했고, [[뉴욕 닉스]]와 라이벌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동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성장했다. 그들의 불운이라면, 이 시기에 전 세계 농구를 지배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사실 밀러와 조던 시대에 두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붙은 건 1998년 단 한번 뿐이니 조던 때문이라고 보긴 뭐하다. 그러나 1998년 당시 팀 역사상 가장 강한 전력을 구축했고,이때 불스 때문에 우승이 좌절된 건 사실이다. 2000년에 결승에 진출하긴 했지만 이때 에이스 밀러(당시 만 35세)와 릭 스미츠, 데릭 맥키, 데일 데이비스 등 주축들은 이미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다.] 조던이 은퇴했을 때는 두 차례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는데, 이미 말했듯 [[패트릭 유잉]]의 [[뉴욕 닉스]]와 [[샤킬 오닐]], 앤퍼니 하더웨이가 버틴 올랜도 매직에게 패하면서 탈락했다. 그리고 조던의 복귀 이후에 다시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나 3승 4패로 시카고 불스에게 지면서 탈락. 정말 한 끗 차이로 정상 도전에 실패했다.[* 페이서스는 7차전 4쿼터 중반까지 불스를 앞서고 있었다. 당시 NBC 해설자 밥 코스타스, 불스의 스티브 커 등 많은 사람이 훗날 회고하면서 "불스 왕조가 이대로 끝나는 듯 싶었다"고 할 정도. 참고로 이때 팀성적이 약간 더 좋았던 시카고에서 4경기, 인디애나에서 3경기가 치러졌는데 모든 경기에서 홈팀이 승리했다는 걸 생각하면 홈코트 어드밴티지의 중요성을 짐작할수 있다. 이 시즌에서 50여경기를 치렀던 올스타전 시점까지 인디애나가 동부 1위였다는 점, 최종적으로 세경기 차이로 1위와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놓쳤다는 걸 생각하면 페이서스 입장에서는 뼈아픈 일이다.] 같은 시기에 주 득점원인 밀러가 경기 도중 트래시 토크를 남발하거나 존 스탁스 등과의 싸움질 등 팀 리더답지 않은 돌발행동을 일삼아 다른 쪽으로 유명해졌다.[* 이 때문인지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인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는 1998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맞붙었던 [[마이클 조던]]이 직접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배드 보이즈]] 이후 가장 동부에서 상대하기 어려웠던 팀으로 꼽았다.] 1996-97 시즌에 주전들의 줄부상과 팀워크 부재로 인해 39승 43패로 플옵 진출을 못 했고, 브라운 감독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떠났다. 이에 사이먼 구단주는 고향 출신의 슈퍼스타인 [[래리 버드]] 감독을 모셔다가 새 출발을 알렸고, 악동 밀러도 나이를 먹고 점차 각성해 PO의 끝까지 돌파하면서 [[2000 NBA 파이널|1999-00 시즌 NBA 파이널]]에 오를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경기에서 인디애나는 상당히 선전했다. 골밑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선전한 것. 그러나 최고 승부처였던 4차전 연장 승부에서 아깝게 지면서 비록 파이널에서 LA를 33점차로 털어버린 팀이 되었지만, 결국 2승 4패로 우승에는 실패했다. 아깝게 파이널에서 패한 뒤 감독 래리 버드가 고질적 등 부상때문에 감독직조차 할 수 없게 되어 [[아이제아 토마스(1961)|아이제아 토마스]][* 페이서스 시절 강팀은 아니지만 리빌딩에 괜찮은 전력을 만들어 주고 3시즌을 보냈으나 [[뉴욕 닉스]]로 건너가 닉스를 말아먹는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레지 밀러는 방송에서 토마스를 지칭할 때 다른 패널들이 그렇듯 "아이제아"라고 하는 대신 "감독님 (coach)라고 한다. (물론 아이제아라고 할 때도 있다) 그에 대한 존경심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가 감독으로 부임해 팀을 수습했다. 밀러가 조금씩 노쇠했지만, 포틀랜드에서 저메인 오닐이라는 실패한 유망주를 데려와 팀의 중심으로 고쳐냈고, 여기에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론 아테스트]], 알 해링턴 같이 스피드와 신장의 조합이 갖춰진 달리는 농구를 만들어 다시금 우승에 도전했다. 2003-04 시즌을 앞두고 전 감독 래리 버드가 구단 운영사장으로 돌아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감독이던 [[릭 칼라일]]을 감독 자리에 앉혔다. 정규시즌에서 61승을 거두면서 대권에 다시 도전했지만, 래리 브라운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지면서 도전 실패. 그리고 밀러의 은퇴 시즌인 2004-05 시즌에 다시금 정상 도전에 나섰지만, 정규시즌 도중 론 아테스트의 돌출 행동으로부터 비롯된 최악의 난투극으로 인해 전력이 망가지면서 결국 정상 도전에 실패했고, 밀러는 은퇴했다. 다만 이때 인디애나의 투혼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패싸움이 있고 주전들과 벤치 멤버 대부분이 징계를 먹은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한동안 몰수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가야 하는 최소 선수 숫자 7명을 채우기 위해 D리그에서 선수를 급히 수급해 오는 등 무리수를 둬야했다. 실제로 난투가 일어난 다음 경기인 올랜도 매직 전에서서 평상시 주전은 한 명도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며, 단 여섯 명만이 경기에 뛰었고 주전 다섯명은 모두 42분 이상에 에디 길과 프레드 존스(평상시에는 벤치에서 출전하는 선수들이다)은 무려 48분을 전부 뛰었다. 페이서스는 매직전을 3점차로 아깝게 패배한 이후 셀틱스 전에 단 8명의 선수만 기용하면서 승리한 걸 시작으로 놀랍게도 '''3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7연패를 거두는 등 전력 저하는 피할 수 없었다. 에이스인 저메인 오닐이 징계와 부상으로 44경기만 뛰고, 아테스트는 완전 아웃에 나머지 주축 선수들도 대부분 5,60경기 수준에 그치는 와중에 페이서스는 투혼을 발휘해 동부 6위, 44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물론 전 시즌에 60승을 넘긴거나 "올해야말로 우승의 적기"라고 기대를 건 것에 비하면 크게 못 미쳤지만 애초에 전력을 발휘할 수가 없는 상황. 심지어 플레이오프에서는 3번 시드이자 폴 피어스, 앤트원 워커 콤비가 이끌던 보스턴 셀틱스를 7차전만에 따돌리고 2라운드에 올랐다. 2라운드에서 맞붙은 상대는 운명의 피스톤즈. 페이서스는 2,3차전을 연속으로 잡아내며 초반에 2승 1패로 앞서나갔으나 디펜딩 챔피언이자 탄탄한 전력의 피스톤즈를 꺾인 애초에 무리였다. 게다가 페이서스는 전 시즌 리그 최고의 수비팀 중 하나였으나 최고의 수비수 아테스트가 출전하지 못하고 오닐은 부상으로 이전만큼의 위력을 잃기 시작했으며, 노장센터 데일 데이비스는 이전만큼의 위력이 아니었다. 결국 3~6차전을 그대로 패하며 시즌을 마무리하고 만다. 그 와중에 40살 노장 [[레지 밀러]]가 팀내 득점 2위인 14점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으나 전력차를 뒤집기는 역부족이었다. 비록 우승은 실패했지만, 페이서스는 객관적인 전력을 뛰어넘는 활약을 펼쳤고, 노장 밀러는 홈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으며 명예롭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